국민일보 미션라이프를 읽다가 도전을 주는 기사를 보았기에 다음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한국전쟁 61주년을 맞아 한국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특별히 한국교회에 대해 기도하고 있었는데
더취 목사님을 통해서 한국교회에 참 필요로 하는 말씀을 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특별히 기사의 마지막 부분이 참 중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읽으시다가 혹 지루하시다면 마지막 부분으로 바로 가셔서 그부분은 꼭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부산의 수정동 교회 조관호 목사님이 정말 중요한 글을 국민일보에 기고해 주셔서 함께 읽으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첨가했습니다
복음의 능력, 말씀과 성령의 능력, 기도와 예배의 감격과 감동을 잃어버린 교회들이 성도들이 꼭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다시는 6.25와 같은 처참한 전쟁이 다시는 한반도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 조국이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위대한 과업을 이루는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선진조국이 성숙되고 참되게 부흥하는 한국교회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변화란 혼란의 또 다른 말입니다. 무질서와 혼동 없이 새로움이 올 수 없지요. 그 과정에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경험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겪는 혼란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기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영동제일교회 주최 ‘2011 주의 길을 예비하라’ 성회 참석을 위해 내한한 더치 쉬츠 목사는 최근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교회의 어려움을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진단했다. 쉬츠 목사는 ‘왕처럼 기도하라’(토기장이)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중보기도’(베다니출판사) 등 중보기도에 관한 베스트셀러의 저자이자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부흥 사역자. 그는 내외적 비판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한국 교계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도 “모든 변화의 주체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면서 “하나님이 한국 땅에 선한 변화를 이루시도록 현재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쉬츠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항상 작은 문 너머에 새로운 세상을 준비해 놓으신다”며 앞으로 한국은 남북통일을 이룩해 아시아의 진정한 제사장 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에 따르면 이런 ‘통일 부흥’의 문을 통과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한국 교회가 과거의 구습과 현재의 욕망을 벗어던지는 ‘내려놓음의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 그 전제조건의 충족 없이는 어떤 선한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쉬츠 목사는 이는 자신의 경험에서 내린 생생한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쉬츠 목사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미국 콜로라도주 스프링스 하비스트 펠로십 교회를 담임했다. 하지만 “지금 네가 있는 곳에서 벗어나라”는 주의 음성을 듣고 20년간 목회하던 교회를 떠났다. 손수 지어 애착이 강했던 집마저 팔아야 했다. 충실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신했던 그도 목사 사임 문제로 6개월을 고민했었다고 고백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네가 누렸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으라’고 말하셨습니다. 저는 결국 ‘네’라며 순종했습니다. 그 분의 생각은 저의 생각보다 훨씬 크시니까요. 그분은 저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 놓길 원하셨습니다. 지금의 한국 교회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는 그분의 명령에 순응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더치 쉬츠 목사는 바르게 순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간을 뜻하는 헬라어의 두 단어인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에 대해서 설명했다. 크로노스는 그냥 흘러가는 일상 시간을 뜻한다. 반면 카이로스는 놓치면 다시 붙잡을 수 없는 기회의 순간이다. 자기 존재 의미를 발견하는 결정적 시간이다. 거룩한 전환기는 카이로스적 시간을 말한다.
“우리가 크로노스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카이로스적인 시간의 삶으로 바뀌는 일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갑자기 시작됩니다. 변화는 하나님이 일으키시니까요. 하나님이 ‘변화시키리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분과 함께 변화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쉬츠 목사는 많은 목회자들이 한때 크게 쓰임 받았던 시절에 도취돼 하나님이 준비하는 새로운 물결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은 인내하며 이들을 설득, 다시 지도자로 세우실 수 있지만 그들을 피해 다른 이를 통해 역사하실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전심으로 기도하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젊은이들을 기도하도록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의 회복만이 역사를 바꾸는 기도, 왕의 기도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제발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 보십시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질 겁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아무 쓸모없는 종교 행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다음은 부산 수정동 교회 조관호 목사님의 글입니다.
다원주의화 되고 영적인 혼란과 영적인 무기력이 판을 치고 있는 우리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들어야 할 또한 모든 복음의 사역자들이 들어야 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다원화된 세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떤 것도 절대화 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절대적 가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산산조각 난 세상입니다. 경제, 정치 사회 구조, 과학, 교육, 가정, 사랑, 가족 관계, 남녀관계, 결혼, 윤리 등등 모든 분야에서 절대 가치는 없어졌습니다. 왜 절대 가치를 버렸을까요? 생존을 위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자유스러움을 위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씁쓸한 웃음을 만들어 내는 것은 종교가 절대적 가치를 버렸다는 것입니다. ‘종교’란 인간이 만들어 내긴 했지만 그래도 종교는 정신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인데 그것들이 절대적인 가치를 버렸다면 웃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통곡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가 절대적 가치들을 버리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절대적 가치를 버린 것 같아 가슴이 메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능력이 초라하게 취급 받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탑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외면당하고 더욱이 기독교의 가장 영광스러운 복음이고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소망인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혀 기다리지 않는 교회가 된 것같아 통탄스러운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땅에서, 사회 속에서 생존하기 위하기 위해서 타협하는 것일까요?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스스로가 포기하면 천대하는 것일까요? 더 멋진(?) 내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을 교회가 만들 수 있다고 믿기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복음을 쉬쉬하고 있는 것일까요?
복음은 절대적 가치입니다. 그리스도 교회와 성도가 이 절대적 복음의 가치를 부끄러워한다면 통곡할 노릇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으로 굳게 서야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붙잡지 않으면 지옥갑니다. 윤리로 천국가고 지옥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역사를 따르지 않는 성결은 사탄의 놀림감일 뿐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한 치유가 아니라면 또 다른 상처일 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헛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위를 세우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신앙입니다.
원색적인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숫자가 거듭난 생명의 숫자가 아닐 경우 그것은 마네킹을 모아놓고 좋아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한 성결함이 아니라면 그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거룩한 것에 대한 고통스런 흉내 내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심리학적 방법으로 마음을 치료하면 그것은 또 다른 상처를 남길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랑스러워 하시는 교회로 세워야 합니다. 주님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그리도 애절히 말하는 십자가 속에 있는 거듭남의 복음, 성령의 역사로 인한 변화된 거룩함과 온전한 회복,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복음으로 교회의 잔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바래서 교회 공동체로 들어온 사람들을 주님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원색적인 복음이 필요합니다. 기독교의 힘은 숫자가 아닙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부동산도 아닙니다. 엄청나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건물도 아닙니다. 학위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힘은 복음입니다. 능력은 복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복음의 능력을 천대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하면서 주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색적인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