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선교사로 수고하고 계시는 김명식 양은숙 선교사님이 지난번 저희 교회를 방문하시고 저희와 교제하시면서 남겨두고 가신 블로그에 최근 4월 18일 날짜로 글 한편을 실어놓으신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선교현장인 아프리카 탄자니아
그곳의 어른들을 향한 긍휼과 아픔과 실망 들 속에서 어린이들을 향한 주님의 긍휼과 사랑과 기대 그리고 그들이 주님의 사람으로 아름답게 성장하길 소원하는 선교사님들의 간절한 기대를 느낄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제목: 어린이 사역들을 통한 기름부으심
약 5년전인 가,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 지역(상업적인 수도)에 거주하였던 한국대사가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 가기 전, 이러한 말을 하였음이 늘 기억에 남습니다. “탄자니아의 장래는 보이지를 않습니다. 정부는 너무 부패하여서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현실은 더욱 악화되어 질 것입니다”
여전히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온 선교사로서, 신앙적인 양심을 가지고 이 땅에 온 기독교인으로서도 전혀 수긍이 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인 생각이라고 공감이 되곤 합니다. 약 100년 전에 한국에 오셨던 언더우드선교사님의 유명한 시 중에, “조선인의 마음이 보이지를 않습니다!”라는 대목과 너무나 흡사하기도 합니다.
사역의 현장에서 항상 느끼는 것은 이 나눔을 통하여 과연 현지인들이 얼마나 마음의 변화, 삶의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을 까 하는 의구심입니다. 단순한 의지적인 의심이라기 보다는 막연할 수 있어도 최소한의 복음(나눔)의 열매를 보고 싶은 순수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Give and Take”라는 인지상정의 측면을 포함하여 성경에서도 한 달란트를 빌려 주고 은행이자를 언급하는 주님의 비유를 들자면, 열매를 바라는 마음은 그저 단정적인 표현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하셨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린양과도 별 차이가 없이 성경에서 인용되었으며 천국백성의 잣대로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대부분의 사역들이 어른들을 상대로 이루러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역에 대한 실망이나 절망감들은 어른들로부터 생기게 마련입니다.
언젠가부터 사역을 하면서 마음이 곤하고 지치는 듯한 순간에 갑자기 어린아이에게 초점을 맞추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사역(어린이 사역, 전기-솔라랜턴 보급사역 등)을 하더라도 중심에 어린아이가 있는 것입니다. 갸령, 어린이 사역들을 하면서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통하여 곁에 있는 부모나 이웃어른들을 응시하며 모든 물품이나 재정은 어린이를 위한 것이라고 굳이 강조하고 또 강조한답니다. 또한 솔라랜턴만 하더라도 각 가정을 방문하며 강조하는 바는 이 귀한 솔라제품을 우선적으로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사용되어져야 한다고 다짐, 다짐 하는 것입니다.
탄자니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에서 지금까지의 사역들에 대한 열매를 고려한다면 억장이 무너질 것인데 그렇다고 무슬림들이 잘하는 그저 구제에나 마음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할 수 밖에 없는 예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면 감히 너느누구도 아프리카인을 나무라기도 힘이 듭니다. 간간이 마음에 확실한 감동이 있을 때만 현지인들을 나무랄 수가 있는데 물론 사랑에 근거한 권면입니다.
이렇듯 열매에 대한 실망이나 속이 상하고 안타까움으로 가득찰 때, 어린아이를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얼마 남지 않았을 미래를 기대하기만 합니다. 최소한 지금 나의 앞에 있는 아이들만큼은 저 어른들보다 신실해 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뿐입니다. 아니변한다고 하여도 괜찮을 것이겠지요. 오직 말세에 대한 소망만으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성령님께 완전히 위탁하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성령님을 통하여 전담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큰 일을 이루기 위하여 작은 일을 먼저 행하여야 하는 천국의 진리를 더욱 굳게 잡고 싶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소외되고,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통하여 이웃을 바라 보았습니다. 또한 어린아이들을 통하여 순종함이 부족한 어른들을 향한 낙심을 위로하였겠고(우리를 위하여) 자신 또한 그렇게 위로 받았을 것입니다.
여러종류의 사역들을 하면서 어린이들을 바라보고, 생각하면 덜 지치고 새로운 힘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스스로 위로를 할 까 반문해 보기도 하였는데 확신이 들기는 이것이 예수님의 기름부으심이어서 그럴 것이라는 겁니다. 단순히 어느 가정을 혹은 교회를 방문하여도 어디에나 어린이는 따라 다닙니다. 마치 예수님의 곁을 따라다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은 아예 어린이만을 상대하는 사역을 하기도 합니다. 어린이만을 상대로 하는 NGO 단체들도 무수히 많습니다.
며칠 전, 어느 분이 사이비종교(단월드, 이승헌)에 대한 동영상을 보내 주어서 보았는데 온 몸을 특별히 머리를 뒤 흔들어 버리는 독특한 뇌교육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심각한 것은 근거도 없는 뇌운동법이 오래전 미국에서부터 유행을 타면서 지금에 까지 이르고 있으며 특별히 남쪽지방을 중심으로 어린이 사교육 현장에 전파되고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이단종교와는 다르며 단지 컬트(Cult)의 의미중에 “소그룹 운동”이 해당이 된다고 보여집니다. 아무튼 아무 이유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어른들의 돈만 밝히는 무분별한 전수가 우리의 가슴을 쓸어내리는 현실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최근에는 탄자니아의 마사이족도 무슬림으로 개종을 하는데 주요 대상이 역시 어린이들입니다. 무슬림 역시 모스크학교를 세우고 장학금 명목으로 어린이들의 학비를 무료로 제공해 줍니다. 이 어린이들이 무슬림에게 갈 지 아니면 예수님께로 갈 지는 아무도 장담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전에 교회가 아니면 갈 때가 없었던 상황에 비하면 너무나 심각한 결단의 시간에 쫓기는 말세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만큼 선교사들의 마음이 갈라지고 분주해 지는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천국의 상징은 온통 어린이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어린양이 다스릴 저 천국! 가난한 심령의 대표자가 어린이 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서 마치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였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서의 큰 상급은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기보다 어린아이와 같이 살아가야 하는데 그 기름부으심은 우선, 어린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이겠고 그리고 어린 아이처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