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종교개혁자 시리즈를 올리다가 마지막으로 준비한 존 낙스에 대해서 올리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죄송스러움을 느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올리겠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고요
지난날 주님이 원하시는 바른 교회를 세우고 싶어했던 종교개혁자들의 그 열정과 숨결을 느낄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수요예배 -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종교개혁자 시리즈-존 낙스 2017년 11월 29일
1 출생과 개혁자가 된 배경
존 낙스가 태어난 해에 대해서는 학자 마다 견해차가 있는데 어떤 이는 1505년, 어떤이는 1513년 혹은 1514년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그는 스코틀랜드의 해딩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는데 그의 가문은 존경을 받았으나 가난한 농군이었고 그는 성 앤드류 대학에서 로마 캐톨릭 사제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초대 교부인 제롬과 어거스틴의 글들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그는 제롬으로부터 성경만이 하나님의 진리의 순수한 원천이라는 것과 원어로 읽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합니다 또한 어거스틴에게서는 하나님의 은총인 성경의 내용을 신뢰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스코틀랜드의 상황은 모든 면에서 종교개혁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나라 전체 부의 반 정도를 성직자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사제들은 모든 면에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타락하여 탐욕과 야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당시 제임스 5세가 일찍 죽고 딸인 메리 스튜어트는 프랑스로 가서 왕자와 결혼하고 스코클랜드는 제임스 5세의 아내인 기즈가의 메리 왕비가 권력을 행사했는 데 캐톨릭이었던 그녀는 종교 개혁사상이 스코틀랜드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종교개혁이전에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 루터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1526년에는 틴데일이 영어로 번역한 신약성경이 스코틀랜드에 전해졌고 1528년에는 성 앤드류 대학교의 교수인 패트릭 해밀튼이 독일에 가서 루터의 영향을 받고 돌아와 몇 개월간 개혁적인 설교를 하다가 붙잡혀 화형을 당합니다 죄목은 “성직자만 볼 수 있는 성경을 보고 성경을 읽도록 독려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20여명의 개혁자들이 화형을 당합니다
이런 와중에 낙스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조지 위샤르트와 그를 통해 접한 루터와 루터의 글이었습니다 낙스는 1545년 12월 쯔빙글리의 제자인 종교개혁자 위샤르트와 친분을 가지면서 두달간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개신교로 개종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루터의 서적들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낙스는 위샤르트가 설교할 때면 칼을 들고 호위할 정도로 그를 존경하였다고 하는데 위샤르트는 후에 베이튼 대주교에 의해 붙잡혀서 화형을 당하였습니다
개혁자들은 위샤르트를 죽인 베이튼 대 주교를 죽이고 성 앤드류 성을 점령해 버립니다 그리고 낙스는 1547년 세인트 앤드류 성에서 3개월 머물며 설교가로 봉사합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을 종교개혁자의 길로 가게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는데 그해 6월 여왕의 요청으로 세인트 앤드류성을 공격한 프랑스군에 잡혀가서 노예선에서 19개월 동안 노를 젓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낙스는 이때 몸이 상해 평생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합니다
1549년 그는 영국의 중재로 풀려나서 영국으로 갑니다 그리고 1551년 영국에서 정식 성직자가 되고 탁월한 설교자로서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6세의 지원으로 종교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에드워드 6세가 죽고 1553년 카톨릭 신도인 메리- 메리 여왕은 개신교 지도자 300명을 죽였고 그래서 피의 메리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가 즉위하여 영국교회의 천주교 복귀를 선언하고 개신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해 지자 낙스는 800여명의 개혁자와 함께 대륙으로 피난하는데 낙스는 1554년에 칼빈이 있는 제네바로 피신합니다
2. 제네바에서의 배움과 조국으로의 귀국
제네바에서 낙스는 그의 생애 가장 위대한 스승인 칼빈을 만납니다 그가 보기에 그곳은 “사도시대 이후 가장 완전에 가까운 그리스도의 학교”였습니다 그는 칼빈의 신학과 사상과 교회정치에 깊은 영향을 받게 되는데 그 외에도 베자, 불링거 등 여러 개혁자들을 만나서 영향을 받게 됩니다
낙스는 1555년에 스코틀랜드로 귀국하여 6개월 동안 설교를 합니다 그러나 상황은 종교개혁을 위해서 무르익지 않았기에 다시 제네바로 돌아와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인 피난민 교회의 목사가 되어 사역합니다 거기서 그는 목사 장로 집사로 구성된 칼빈의 장로정치를 배우고 실현하게 됩니다
그렇게 제네바에서 목회하며 또 칼빈과 여러 개혁자들을 통해서 배우면서 고국으로 다시 돌아갈 날을 준비하던 낙스는 마침내 1559년 고국으로 돌아와 달라는 스코틀랜드 의회의 요청을 수락하여 그해 5월 2일 다시 스코틀랜드로 돌아옵니다 그때 그는 이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알아듣고 “오 하나님 스코틀랜드를 저에게 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3. 스코틀랜드에서의 개혁과 그의 마지막 생애
다시 돌아온 낙스는 에딘버러의 세인트 자일스 교회에서 13년간 복음을 열정적으로 선포하게 됩니다 그의 설교는 스코틀랜드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낙스의 설교에 너무 강하게 마음에 찔려 설교 메모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낙스는 칼빈에게서 배운 장로교 제도를 스코틀랜드에 도입하게 됩니다
1560년 6월 11일 기즈가의 메리 여왕이 죽고 난 그 이후 스코틀랜드의 개혁은 급진전 되었는데, 7월 6일에 불 영 평화협정이 맺어져 프랑스의 영향을 제거하였고 그리고 한달 뒤 스코틀랜드 의회는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를 작성하여 100년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나올 때 까지 이 신앙고백서를 사용합니다 또한 의회는 캐톨릭을 불법화하는 법을 통과시키게 됩니다
낙스는 이런 개혁을 후세에 이어 가기 위해서 교육을 강조합니다 모든 교구에서 젊은이들에게 경건 훈련을 시켰고 주요 도시에는 대학들이 설립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지역에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과 복음을 전파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낙스는 1561년 12월 5명의 목사와 36명의 장로들과 함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총회를 조직합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 총회입니다
하지만 1561년 다시 캐톨릭 신자인 메리 스튜어트가 프랑스에서 돌아와 집권하면서 그녀는 기민하게 캐톨릭의 부활을 시도합니다 이렇게 되어 스코틀랜드는 메리를 추종하는 자들과 종교개혁파로 분열되게 됩니다 낙스의 종교개혁에 새로운 위기가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러나 성적으로 문란했던 메리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남편들끼리 서로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이에 귀족들과 시민들의 민심을 잃고 또한 이에 대해 종교개혁파가 강하게 저항하여 1567년 메리 여왕을 퇴위시킵니다
이로 인해 스코틀랜드는 확고한 장로교 국가가 되었고 칼빈을 통해서 제네바에서 보았던 비전과 꿈을 낙스는 마침내 자기의 조국 스코틀랜드에서 현실화 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낙스는 1572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4 존 낙스의 업적과 평가
존 낙스. 그의 삶의 대부분은 그리스도를 위한 피나는 투쟁이었습니다 노예선에서부터 국민의 지도자가 되는 날까지 그의 삶에서 싸움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의 조국은 바른 신앙 위에 세워지게 됩니다
“로마 교회는 창녀다 교리든 관습이든 온갖 영적인 간음으로 더럽혀져 있다 만약 회개치 않으면 교황도 왕도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의 담대하고 용기있는 선포에 메리 여왕이 남긴 말은 유명합니다 “영국의 100만 군사보다 존 낙스의 기도가 더 무섭다”
낙스는 ‘하나님의 나팔수’라고 불릴 만큼 이성과 감정에 호소하는 열정적인 설교자로서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또 기도의 사람으로서도 유명합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고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오 하나님 스코틀랜드를 저에게 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시옵소서”라고 목숨을 걸고 기도한 기도의 사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의 기도는 그의 조국 스코틀랜드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외치는 엄격한 교리나 신조에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경건하고 도덕적인 삶을 산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이런 열정과 변치 않는 믿음이 결국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5 교훈과 깨달은 점
종교개혁자들을 살펴보면서 우선 느끼는 것은 예전에는 잘 몰랐던 많은 순교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땅의 복음과 진정한 교회됨을 위해서 피흘린 많은 분들에게 진정한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물론 여기서 앞의 한사람은 아담을 말하고 뒤의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한사람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순종은 수많은 사람을 고통과 어두움 가운데 몰아넣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순종은 얼마나 수많은 사람을 기쁨과 자유와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것을 존 낙스의 삶을 통해서도 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의 진리대로 살고 선포하고자 했던 한 사람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조국을 진리의 말씀위에 세우기를 간절히 원했고 기도했던 한 사람 그가 바로 낙스였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이렇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열망하며 목숨걸고 기도하며 생명의 복음을 전하며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를 원하는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을 간절히 찾고 계신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