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 목사의 성령받은 이야기
저는 신학교에 다닐 때 개척교회를 한 바가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오만한 마음이 하늘을 찔러서 조금 목회를 못하는 목사님들을 보면서 '저것도 목회라고 하냐? 내가 개척을 하면 1년에 100명 이상 모일 것이다'라는 착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개척교회를 시작한 지 1년도 못 되어 보증금을 다 까먹고 빈털터리가 되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교회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그 비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를 폐쇄할 때 합신의 어떤 선배목사님이 저를 교육전도사로 사역할 기회를 주어서 1년 간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1년이 지난 후에 저는 전북 진안의 어느 시골로 다시 개척사역을 떠났습니다. 거기서도 2년을 못 채우고 다시 충북제천으로 사역지를 옮겼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중심이 아니라 내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천에서 14년 간 사역하면서도 연속되는 실패를 맛봐야만 했습니다. 14년 동안 교회가 어려워서 다른 교회에서 후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부업을 해야만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목회가 안 되니 다단계사업을 해서 목회를 잘 해보려고 발버둥을 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단계사업으로 목회가 잘 되기는커녕 오히려 어머니가 넣어주신 아들의 교육보험까지 다 털어 넣고 말았습니다.
제천에서 몇 년이 지났을 때 저는 아내에게 힘들어서 더 이상 목회를 못하겠다고 선언하고 부모님이 계신 양양으로 도망을 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의 호통을 듣고 결국 다시 돌아와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목회를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목회자가 된 것을 끊임없이 후회하면서.......
제천에서 14년이 지나자 저의 심신은 물론 교회까지 모두 지쳐서 더 이상 그곳에서 사역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역지를 찾게 되었는데 지금 사역하는 교회에서 오라고 해서 통영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통영의 사역 역시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서 목회를 해도 생활비보조를 받지 않으면 목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교회가 어려웠습니다. 조금 모이다가는 줄어들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17-8명에서 더 이상 부흥이 되지 않는 정체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목회하는 것이 고역 중의 고역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목회를 그만 둘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너무 들어서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20년이 넘게 목회를 하는 동안 저에게는 남에게 말하지 못할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번 TV를 시청하면 절제가 안되어서 계속 시청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 일로 아내의 핀잔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아무리 절제를 하려고 해도 며칠 못 가서 또 그 병이 도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지금부터 4년 전에는 우리교회에 부흥회를 오신 어떤 강사목사님이 저에게 인터넷바둑을 가르쳐주고 가셨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인터넷바둑에 미쳐서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인터넷바둑에 매달렸습니다. 한번 두었다하면 몇 시간을 두기 때문에 눈이 벌겋게 충혈 되어 아파 와도 조금 있으면 또 두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바둑을 두고 또 두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주자주 밤에 잠도 안 자고 인터넷바둑을 두었습니다. 아무리 절제하려고 노력해도 도무지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교회는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잔소리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급기야 저는 더 이상 설교를 작성할 수도 없고, 어렵사리 작성한 설교를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완전히 침체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죽지 못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이웃교회 목사님 한 분이 부산감림산기도원에서 은혜가 넘치는 무료세미나가 있다고 하기에 지친 심신을 쉬어보려는 마음으로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돈이 들지 않아서 안심하고 갔습니다. 저는 그 집회에서 강사목사님을 통해서 성령세례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설명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성령세례란 오순절로 끝났다고 굳게 믿어왔는데 강사목사님이 성경을 들어서 성령세례가 오순절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성경을 남만큼은 읽은 제가 아무리 성경을 동원해서 강사의 말을 반박하려고 해도 양심적으로 해서는 도무지 반박할만한 성경말씀이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지금까지 내가 믿고있던 성령세례단회론-성령세례는 오순절로 끝났다, 성령세례는 예수 믿는 것이다, 중생이 곧 성령세례다, 라는 이론-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신학적인 이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깨달은 즉시 회개를 하였습니다.
"주님, 제가 지금까지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성령세례를 가르친 것을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저에게도 성령세례를 주시옵소서! 저의 목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달라지게 해 주시옵소서!"
다음날도 역시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날 오후 집회시간에 중국에서 사역하는 어떤 선교사님의 안수기도를 받을 때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의 손이 저의 머리에 닿자마자 갑자기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이 온 몸이 짜릿해지더니 곧 바로 혀가 떨리면서 방언이 나오기 시작했고, 온 몸 역시 벌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자 내 몸에서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축 처져서 지내던 사람이 팔팔하게 살아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돌아와서 설교를 하자 놀라운 힘이 솟아났습니다. 마지못해서 하던 설교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인터넷바둑을 얼마든지 절제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TV시청 역시 매우 쉽게 절제가 되었습니다. 신기해도 보통 신기한 게 아니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을 성령세례를 받고 난 다음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성령세례를 받은 후 또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도생활입니다. 성령세례를 받기 전에는 기도를 단 10분간을 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세례를 받고 나자 기도를 1-2시간 하는 것은 쉽게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매일 바둑을 안 두면 답답해하던 사람이 매일 기도를 안 하면 답답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변하자 교회도 변하게 되었습니다. 성도들 중에 성령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부터 성령세례를 받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어른들도 성령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힘있게 가정일과 직장일과 교회일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성령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힘있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성령세례를 받고 한 1년 동안은 성도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힘이 든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 몇 달 동안에는 성도들 중에 일부가 저를 거부하는 눈치를 보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계속 성령운동을 펼쳐나가자 그런 분위기가 모두 해소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성령세례를 받고 1년이 지난 후부터 장기침체를 계속하던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숫자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신자들이 들어오면 놀랍게 변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술에 인박여 살던 사람들이 즉시로 술을 끊고 새사람이 되는가하면, 우상숭배에 찌들어 살던 사람들이 즉시 우상숭배를 중단하기도 하고, 가정파탄직전에 간 가정이 즉시로 회복되는 역사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소문이 나자 더욱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주일낮11시예배에 20명(어린이 포함) 정도가 모이던 교회가 1년도 못 되어 40명(어린이 포함)이 넘게 모이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당장 주차장과 의자가 좁아서 고민할 정도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앞으로 성령님이 우리교회를 통하여 하실 일이 크게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교회의 모든 성도들 역시 이런 기대로 부풀어있습니다. 다시 한번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